Untitled Document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소비자 행동’에서는 파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파산법은 채무자에게 새롭게 출발할 기회와 부채를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상환할 방법을 제공하기 위해 통과된 법입니다.” 우리나라는 소비자 도산법을 통해 개인 파산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파산제도 또한 미국의 소비자 행동에서 기술하듯 재정적 파탄 상태에 처한 사람들이 자살이나 범죄 행위에 빠지거나, 근로 의욕이 급격히 감퇴하는 것 등을 방지하고자 하는 명분이 전제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과중 채무자들의 새출발을 위해 파산 제도가 비교적 적극적으로 운영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용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각종 불이익을 감수하게 하는 등의 진입 장벽을 만들어 놓았다. 

특히 3000만원 이하의 소액 채무를 갖고 있거나 최근 6개월 내 부채가 총 부채의 30%가 넘게 되면 파산 신청조차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저소득 취약계층의 경우 상당수의 다중 채무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설사 파산신청이 받아들여졌다 하더라도 면책기간까지 1년여가 소요된다. 어느 채무자는 협박성 채권추심을 당하다 파산신청 후 사건번호를 받고는 마음을 놓았다. 그러나 채권추심은 면책이 이뤄지기 전까지는 중단되지 않는다. 그는 계속되는 전화폭탄에 하루하루 면책까지의 날을 달력에서 찢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라고 하소연한다.

또 다른 상담 중에는 자영업을 하다가 사업이 어려워져 부가세를 연체해 취업이 불가능해진 사람도 있다.

대리운전 등의 일용직으로만 전전하던 중 아내 또한 남편을 대신해 가세를 일으켜보기 위해 친척들에게 돈을 빌려 옷 가게를 열었다가 빚만 남기게 되었다. 새출발을 위해 파산을 알아보았으나 남편의 경우 조세는 파산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아내의 경우 최근 6개월 이내 빚이 많다는 이유로 신청조차 불가능했다. 새출발의 기회가 완전히 막혀 있는 셈이다.

최근 1000만원 이하의 채무자 중 2군데 이상의 다중 채무자가 85%나 된다고 한다. 주로 소득과 신용이 모두 낮은 계층이 1000만원을 빌리기 위해 여러 금융기관에 도움을 받았다고 봐야 한다. 당연히 이자율은 높을 것이고 사금융 등으로 악성화될 가능성이 클 수밖에 없음을 금세 예측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아슬아슬한 빚을 여러 개 끌어안고 있는 다중 채무자가 지난 4월 말 182만명(개인신용평가회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 자료)에 이른다고 한다. 이들의 상당수는 파산제도 이용이 쉽지 않을 것이다.

파산제도는 앞서 소비자 행동의 표현대로 다중 채무자들의 새출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즉 채무자들의 노동능력이 채무 상환 압박 때문에 급격히 떨어져 사장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필요하다. 경기 후퇴 등의 외부 요인이 발생하기 전 나름의 내실 있는 자영업을 운영하던 성실한 노동능력과 전문기술 등을 가진 사람들이 채무 압박 때문에 도피 생활과 극단적인 죽음으로 내몰린다.

채무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다수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우려는 가계빚이 1000조원을 넘어서고 점점 질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현실에서는 사치스러운 이야기다. 이미 과도한 가계빚의 상당 부분은 채권자들의 무분별한 신용공급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파산제도가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권은 채무자의 신용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돈을 빌려준다.

더욱이 은행권의 비교적 낮은 금리의 빚이 아닌 카드 대출 등의 고금리 빚으로 유혹해왔다. 이것이 바로 파산제도가 유명무실한 상황에서의 채권자 모럴 해저드이다. 안되면 불법 고리사채라도 써서 갚게 만들겠다는 심보가 아니라면 저소득 계층에 신용카드 발급을 그렇게 쉽게 했을까.

신용평가는 채권자에게 주어진 의무이다. 그를 소홀히 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파산제도의 진입장벽이다. 파산제도가 원활해진다면 채권자들은 이전보다 신중하게 신용을 공급할 것이다. 적어도 돈 빌려쓰라고 아우성대는 문자메시지는 보낼 엄두를 못 낼 것이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883 “한국, 지금은 금리 올릴 때 아니다”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5 566
2882 하나·우리·산은금융, 저축은행 인수전 참여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5 562
2881 가계부채 증가세 지속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5 559
2880 “유럽, 지출구조 개선이 해결책… 한국 FTA 가시적 효과 없다”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5 575
2879 정부 “실물경제 급락 없다”… 한은선 성장률 하락 시사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4 568
2878 유로존 국채 금리 치솟아… 한국도 신용위험도 상승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4 565
2877 취업자 2500만명 넘었다는데… 주변엔 구직자들뿐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4 589
2876 李대통령 “그리스 유로존 탈퇴 대비…그리스 총선 결과 주목”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4 567
2875 미국, 자국 쇠고기 수출하면서 외국산 쇠고기의 수입은 막아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3 572
2874 한국 조선업, 유럽 위기에 직격탄 … 자동차·전자도 ‘암운’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3 557
2873 “한국 경제 하반기 회복 힘들다” IMF, 성장률 3.25%로 낮출 듯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3 548
2872 김중수 한은 총재 “위기 해결책 아직 못 찾아”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3 566
2871 내집 ‘찜’한 아파트, 전세로 살다 싼값에 분양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2 692
2870 “세금 안 걷는 균형재정은 허구 … 복지 축소 우려”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2 563
2869 주가 1860선 회복… 환율은 큰 폭 하락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2 619
2868 한은 ‘금리인상 실기론’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2 555
» [안티 재테크]꼭 필요한 개인 파산 제도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1 564
2866 IMF “스페인 은행권 지원 370억유로 필요”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1 579
2865 김석동, "유럽 위기, 리만 사태보다 더 심각"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1 562
2864 기준금리 12개월째 동결…연 3.25% 경향신문재무설계팀 2012.06.11 559